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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프랑스 재정위기와 프랑스 혁명의 관계[요약본]

by m_ahh 2017.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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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앞서 정리한 프랑스 대혁명 전개과정에서 프랑스 재정위기가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 간단하게 연도별로 다시 정리한 것이다.

해설을 포함한 자세한 포스팅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1786년 

 재무총장 칼론이 왕가의 재정파탄을 선언하고, 금화주조와 할인은행 발전을 시도하여 타파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한다. 또한 왕에게 특권계층에 과세를 건의하였다.(이는 튀르고와 네케르 또한 시도 한 적이 있다.) 또한 이 것이 계기가 되어 명사회를 재개하기에 이르렀다. 


1787년 

 명사회가 개최된다. 여기서 칼론은 재산에 구별없이 세금을 부과하기를 요청하였으나, 특권계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칼론은 프랑스 재정 보고서를 출판하였고, 이는 칼론와 왕실사이의 사이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결국 루이 16세는 1787년 칼론을 해임하게 된다.  그리고 별 소득없이 끝난 세금신설에 관한 명사회는 삼부회 소집을 야기시켰다.


1788년 

 8월, 루이 16세에 의해 전국 삼부회가 소집되고 재무총장 네케르가 취임한다. 



1789년

1월 시에예스의 <제 3신분이란 무엇인가> 가 출판된다. 그리고 5월 삼부회가 개최되고, 6월 제3신분에 의한 국민의회 설립을 선언하게 된다. 또한 6월 30일 테니스코트의 서약으로 제3신분 의원을 중심으로 헌법 제정까지 해산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게 되고, 삼부회는 제3신분(부르주아)들이 머릿수에 따른 표결을 주장하면서 사실상 폐회되고 만다. 


  이 후, 7월, 국민의회가 제헌국민의회로 이름을 바꿨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제3신분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킨듯 하였다. 하지만 국왕과 귀족은 이를 저지하게 위해 친위대를 이용하게 되고, 7월 네케르 장관 파면까지 겹치면서 이에 파리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며 본격적인 혁명이 발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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