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정치,사회 구조 - 요약
[지식나눔/프랑스혁명사] -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정치,사회 구조[해설포함]
[지식나눔/프랑스혁명사] -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건 프랑스의 재정위기이다?!?[해설]
17~18세기
계몽주의가 널리 퍼지고, 이로 인해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족주의 의식이 고양되었다.
현재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고,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전쟁의 사상적 기초가 되기도 한다.
1756년
1756년부터 1763년까지 걸친 7년 전쟁이 발발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이었으나
전 유럽과 인도,아메리카까지 합세해 대규모전으로 발전했다. 프로이센 동맹이 승리하였고,
영국은 북아메리카 뉴프랑스지역과 인도를 프랑스세력을 몰아내고 차지했다(대영제국의 기초).
이 또한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의 대혁명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1774년
루이15세의 손자 루이 16세가 즉위했다.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앙투아네트와 혼인했고,
프랑스를 개혁할 의지는 있었지만 선천적으로 우유부단하여 추진력이 부족했다.
(또한 개혁을 시도할 때마다 세력 반발에 부딪혀 결국 비극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1776년
루이 16세 치하의 재무총장 튀르고가 파면당하게 된다. 구제도와 재정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상공업의 자유화를 추진했으나
귀족세력의 반발에 개혁에 실패하고 파면당한다.
1776년-1783년
미국의 독립전쟁 기간이다. 이 가운데 1778년,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는 미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프랑스 내의 재정위기는 악화된다(당시 재무총장 네케르). 미국 독립전쟁 종결 이후 프랑스 국내에서도
자유를 열망하는 기조가 강해진다.
1785년
목걸이 사건이 발생한다. 타락한 추기경과 귀족사회 진출의 열망이 있던 백작부인의 술수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기사건에 휘말린다. 추기경은 좌천당하고, 라 모트 백작부인은 수감생활을 하지만
프랑스 내에서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음모로 소문이 났고, 국민의 반감을 샀고, 왕비에 대한 불신이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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